AI가 짓누른 전통 IT 강자들: 팩트셋과 가트너, 시장은 무엇을 오해하고 있나

AI가 짓누른 전통 IT 강자들: 투자자들은 지금 핵심을 놓치고 있는가?

2025년 미국 증시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 중 하나는, AI 열풍의 한가운데에서 오히려 전통적인 정보·리서치 기술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장에서는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것이라는 서사가 빠르게 확산되었고, 그 여파로 오랫동안 안정적인 성과를 보여왔던 일부 기업들은 ‘AI 피해주’로 분류되며 거센 매도 압력을 받아왔습니다.

마켓워치가 보도한 최근 분석은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AI는 이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투자자들이 핵심을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AI is crushing these once-reliable tech stocks. Are investors missing the point?)" 

이 글에서는 해당 기사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AI 공포의 실체를 ‘데일리 글로벌 브리핑’의 시각에서 짚어봅니다. 

AI 확산 속에서 급락한 팩트셋과 가트너 주가를 분석하며, 시장의 AI 공포가 과도한지 여부를 짚어보는 미국 기술주 심층 해설

AI 우려 속에서 급락한 대표 종목들

올해 S&P 500 구성 종목 가운데 가장 부진한 성과를 낸 기업들 중에는 팩트셋 리서치 시스템즈(FactSet Research Systems, FDS)가트너(Gartner, IT)가 포함돼 있습니다. 두 기업 모두 오랜 기간 동안 S&P 500 지수를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해온 ‘신뢰받는 정보 서비스 기업’이었지만, 2025년 들어 분위기는 급변했습니다.

가트너의 주가는 연초 이후 약 52% 하락하며 S&P 500 내 네 번째로 부진한 종목이 되었고, 팩트셋 역시 약 39% 하락하며 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시장이 이들 기업을 외면한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 AI가 이들의 핵심 서비스 수요를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였습니다.

투자자들은 대규모 언어모델(LLM)이 고급 리서치와 데이터 분석을 대체할 수 있다면, 고가의 구독 기반 서비스를 제공해온 팩트셋과 가트너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논리는 올해 세일즈포스(Salesforce, CRM)와 어도비(Adobe, ADBE) 같은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주가 부진에도 반복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은 원래 ‘패자’가 아니었다

시장 분위기와 달리, 장기 성과를 살펴보면 이들 기업은 결코 구조적으로 약한 기업이 아니었습니다. 2024년 말까지의 10년간 성과를 기준으로 할 때, 팩트셋은 연평균 약 13%, 가트너는 약 20%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S&P 500의 연평균 수익률(약 11%)을 크게 상회했습니다.

즉, 현재의 주가 급락은 기업의 장기 경쟁력 붕괴라기보다는, AI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시장의 과도한 공포가 단기간에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진짜 포인트

일부 투자자들은 AI 확산으로 금융·IT 서비스 기업 전반의 인력 수요가 줄어들 것이며, 이는 팩트셋과 같은 기업의 평균 계약 규모를 압박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오토노머스 리서치(Autonomous Research)의 애널리스트 켈시 주(Kelsey Zhu)는 “AI 도입이 장기적으로 금융 서비스 업계의 고용 규모를 축소시킬 것이라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팩트셋은 이미 좌석당(workstation) 판매 중심 구조에서 기업 단위 계약 중심 모델로 상당 부분 전환했지만, 금융 산업 전반의 인력 축소가 현실화될 경우 평균 판매 단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시장의 걱정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가트너 역시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거래 성사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고객사들이 예산 집행을 보수적으로 가져가면서 2025년은 전반적으로 쉽지 않은 영업 환경이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가트너는 3분기 실적에서 매출과 이익 모두 시장 기대를 웃돌았지만, 연간 계약 가치(contract value)가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투자자들의 실망을 샀습니다.


월가의 시각: “AI 공포는 과장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현재의 매도세가 과도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목하는 핵심은 이들 기업이 가진 높은 진입장벽과 데이터 경쟁력입니다.

켈시 주는 팩트셋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단기간에 AI 스타트업이 복제하기 어려운 자산이라고 평가합니다. 팩트셋은 공시 자료, 뉴스, 증권사 리서치, 채권 가격 데이터 등을 장기간에 걸쳐 수집·정제해왔으며, 이는 AI 모델의 학습 데이터로서도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AI 기업들에게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수익 기회를 창출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팩트셋은 자사 AI 도구가 전체 계약 갱신의 약 35%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AI가 기존 비즈니스를 잠식하기보다는, 유지와 확장을 돕는 보조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가트너 역시 AI로 인한 타격이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회사 경영진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AI로 인한 비즈니스 혼란은 극히 미미하다”고 설명했으며, 오히려 고객들이 자신들의 AI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가트너의 리서치와 컨설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트너는 내부적으로도 AI를 도입해 애널리스트 생산성을 높이고, 보고서 발행 속도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주가 회복의 관건은 무엇인가

월가에서는 가트너가 최근 주가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계약 가치 성장률의 회복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윌리엄 블레어(William Blair)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니콜라스(Andrew Nicholas)는 향후 24개월 내 두 자릿수 계약 가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면 주가 반등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직전 분기의 약 3% 성장률에서 의미 있는 개선이 필요함을 뜻합니다.

팩트셋의 경우, 투자자들은 곧 발표될 2026회계연도 1분기 실적에서 AI 통합을 위한 투자 계획과 마진 전망이 어떻게 제시될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AI 인프라와 제품 투자가 단기적으로는 비용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장기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AI는 파괴자인가, 진화의 촉매인가

현재 시장은 AI를 ‘모든 것을 대체하는 기술’로 바라보며, 전통적인 정보·리서치 기업들을 빠르게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켓워치의 분석과 월가 일부 시각을 종합하면, 팩트셋과 가트너는 AI로 인해 무너지는 기업이라기보다 AI를 흡수하며 진화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가깝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 투자 관점에서는 지금의 주가 흐름이 반드시 기업 가치의 본질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AI가 이 기업들을 짓누르는지, 아니면 새로운 성장 국면으로 밀어 올릴지는 앞으로 몇 분기 동안의 실행력과 시장의 인식 변화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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