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냉전과 버블: 기술 패권과 자본 과열의 교차점
인공지능을 둘러싼 새로운 냉전의 서막
2025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The AI Cold War That Will Redefine Everything”이라는 제목의 심층 기사를 통해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인공지능 패권 경쟁을 ‘신(新) 냉전’으로 규정했습니다. 과거 핵무기와 우주개발 경쟁이 패권을 가르던 시대가 있었다면, 이제는 AI가 국가의 과학력과 경제력, 나아가 안보력까지 좌우하는 핵심 무기가 된 것입니다.
WSJ에 따르면, 미국은 오픈AI(OpenAI)와 구글(Google), 엔비디아(Nvidia) 같은 민간 혁신 기업들이 중심에 있고, 중국은 정부 주도형 산업 총동원 체제 ‘AI Plus’를 가동하며 전방위적인 AI 생태계 구축에 나섰습니다. 특히 2025년 중국 스타트업 딥식(DeepSeek)의 신형 모델이 실리콘밸리를 놀라게 하면서, 베이징은 대대적인 자금 지원과 규제 완화를 통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AI는 더 이상 한 기업이나 한 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으로 부상했습니다. 미국은 민주적 가치와 기술 리더십을 방어하기 위해, 중국은 기술 자주권과 체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각각 ‘AI 냉전’의 전선에 서 있습니다.
AI 투자 과열에 대한 마이클 버리의 경고
한편, 마켓워치(MarketWatch)의 최신 기사에서는 ‘The Big Short’의 실제 인물로 잘 알려진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가 AI 산업의 회계적 과열을 정조준했습니다.
참고로, 마이클 버리는 미국의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를 예견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인물로,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The Big Short에서 배우 크리스천 베일이 그를 연기했습니다.
버리는 메타(Meta), 구글(Alphabet),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마존(Amazon), 오라클(Oracle) 같은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이 서버와 GPU의 감가상각 기간을 실제보다 길게 잡아, 이익을 과대계상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이러한 ‘감가상각 조정’으로 인해 2026~2028년 사이 약 1,760억 달러의 이익이 부풀려질 수 있으며, 이는 AI 시장 전반의 밸류에이션 신뢰도를 흔들 수 있는 수준입니다.
버리는 이를 “현대적 사기의 한 형태(a fraud of the modern era)”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기업들이 실제로는 2~3년이면 기술적으로 구식이 되는 서버나 GPU 장비의 수명을 회계상 5~6년으로 잡아, 장부상 자산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 출시되는 엔비디아 칩이 1~2년 주기로 업그레이드되는데도, 기업들은 여전히 낡은 장비를 ‘유효 자산’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장은 감가상각 비용이 줄어들어 이익이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술 교체 비용이 누적되어 향후 큰 손실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버리는 이러한 관행이 기술혁신의 속도보다 회계상의 숫자 맞추기가 앞서가는 상황이라며, AI 산업의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기사에 따르면 모든 전문가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엔비디아의 구형 칩(A100, H100 등)조차 여전히 수요가 높으며, AI 클라우드 인프라의 확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즉, AI 버블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채, 실물 자산과 회계 장부 사이의 긴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냉전의 논리와 버블의 논리가 만날 때
WSJ의 ‘AI 냉전’과 MarketWatch의 ‘AI 버블’은 서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가지 동일한 에너지원—두려움과 탐욕—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AI 주도권을 잃으면 안보가 무너진다”는 두려움이, 시장 차원에서는 “AI를 놓치면 수익 기회를 잃는다”는 탐욕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데이터센터·칩·전력망에 투입하고, 동맹 압박과 수출통제 같은 ‘정책 무기’를 동원하게 만듭니다.
탐욕은 투자자와 기업이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 속에서 과감한 설비투자와 회계상 낙관(예: 감가상각 기간 장기화 논쟁)으로 이어지죠. 이렇게 안보의 논리(국가)와 수익의 논리(시장)가 동시에 가속되면서, 세계는 기술과 자본이 함께 달아오르는 과열 구간에 들어섰습니다.
이 상황은 냉전기 ‘우주 경쟁’과도 닮았습니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Sputnik) 인공위성 발사로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고, 1958년 NASA가 설립되며 국가 차원의 대규모 과학 투자가 본격화되었습니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아폴로(Apollo) 프로그램은 1969년 달 착륙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항공우주·통신 등 ‘실물 인프라’가 급속히 발전했고, 동시에 국방비와 민간 투자도 폭증했습니다.
오늘날의 AI 역시 유사합니다. AI 칩은 로켓 엔진에, 데이터센터는 발사대에, 전력 인프라는 연료에 해당합니다. 국가가 ‘안보=기술’ 공식을 내세워 장비·전력·데이터를 총동원하고, 시장은 그 기대를 선반영하며 밸류에이션을 밀어올립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국가가 주도했다면 지금은 ‘빅테크·벤처 자본·클라우드 사업자’ 같은 민간 플레이어가 최전선에 서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오늘의 AI 경쟁은 냉전기의 국가 동원 체제와 21세기형 민간 혁신 체제가 겹쳐진 형태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기술 패권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두 기사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실은, AI가 이제 소프트웨어 혁신이 아니라 물리적 인프라 산업이라는 점입니다. AI는 막대한 전력, 반도체, 네트워크, 냉각 시스템에 의존하며, 이 모든 요소가 경제적 지속 가능성과 직결됩니다.
결국 AI의 미래는 단순한 기술경쟁을 넘어, 누가 더 효율적으로, 더 투명하게, 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혁신을 실현하느냐의 문제로 이동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회계의 정직성, 투자 효율성, 그리고 에너지 절감 기술이 새 시대의 경쟁 기준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AI 문명 전환기의 경계선에서
AI는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인프라 문제입니다. 냉전과 버블의 경계 위에서, 세계는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물결은 국가와 기업, 그리고 투자자의 결정을 모두 시험할 것입니다.
특히 2025년 4분기를 맞이한 지금, 투자자들은 ‘산타랠리’ 기대감 속에서도 단기적 가격 변동보다 산업 구조와 자본 흐름의 본질을 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기술주가 다시 상승세를 보일 수 있지만, 진정한 기회는 거품이 걷힌 뒤 남는 지속 가능한 혁신 기업과 인프라형 자산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시장을 단기 이벤트로 보기보다는, AI 시대의 에너지·반도체·데이터 생태계처럼 실질적 생산 기반을 갖춘 영역에 주목하고, ‘기대’보다 ‘기초 체력’을 중시하는 마인드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참고 출처
The Wall Street Journal, “The AI Cold War That Will Redefine Everything” (Nov. 10, 2025); MarketWatch, “Michael Burry’s latest AI criticism is on depreciation” (Nov. 11, 2025); WSJ·MarketWatch 등 Dow Jones 계열 보도 종합.The Wall Street Journal 공식 웹사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