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원자재 슈퍼사이클 신호: AI 데이터센터·달러 디베이스먼트·지정학이 만든 하드애셋 강세
금·은·구리·에너지로 번지는 ‘하드애셋의 역습’
2026년 초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주가지수의 등락 그 자체보다, 주식시장 안에서 ‘하드애셋(실물자산)’과 연결된 영역이 유난히 강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에너지·소재(머티리얼) 기업 주가가 연초부터 빠르게 올라가고, 금·은 같은 귀금속이 다시 한 번 투자자들의 시선을 끌면서, 시장에서는 “또 다른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슈퍼사이클이라는 표현은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 말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단기적인 수급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원자재가 동시다발적으로 강해지고, 그 배경이 지정학(전쟁·정치 불안)과 인프라 투자(특히 AI 데이터센터), 그리고 통화 가치에 대한 불신 같은 구조적 요인과 맞물릴 때, 시장은 “가격 상승이 오래 갈 수 있다”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깁니다.
에너지·소재 주식과 금·은의 동반 강세
2026년 1월 들어 S&P 500 지수 안에서 소재 업종 주가가 약 6.4%, 에너지 업종 주가가 약 4.3%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금은 약 3.7%, 은은 12.4% 올랐습니다. 특히 귀금속의 경우 2025년에 이미 금이 64%, 은이 141% 급등한 뒤라, “이미 많이 오른 것 아닌가”라는 시각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2026년 초반 강세가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에너지 가격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국제유가 기준으로 자주 쓰이는 브렌트유(Brent)는 1월 들어 약 4.1% 상승한 것으로 언급됩니다. 시장에는 “전 세계 원유 공급이 넉넉해져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시각이 남아 있지만, 최근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한 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유가가 쉽게 꺾이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금융자산 vs 실물자산의 균형이 흔들릴 때
뉴욕의 자산운용사 감마로드 캐피털 파트너스(GammaRoad Capital Partners)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일하는 조던 리주토(Jordan Rizzuto)는 지금을 변곡점(inflection point)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식 같은 금융자산과 원자재 같은 실물자산이 서로의 상대적 강도가 바뀌는 국면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과거에 “금융자산이 실물자산보다 훨씬 더 강하게 오른 시기”를 이미 겪었고, 지금은 그 흐름이 다시 흔들릴 조짐이 보인다고 봤습니다. 여기서 ‘테크토닉(tectonic)’, 즉 지각변동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관점은 투자자에게 매우 실용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주식이 올라가는 국면에서도, 실물자산이 상대적으로 더 강해지면 포트폴리오의 중심축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자재를 단순히 “경기 민감 자산”으로만 보기보다, 주식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분산(디버시파이어)로 다시 평가하는 흐름이 생깁니다.
AI 데이터센터가 원자재 시장을 ‘다시 산업 중심’으로 돌려놓고 있습니다
이번 흐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구조적 요인 중 하나는 AI와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을 위한 막대한 자본지출(Capex)입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서버 창고가 아니라, 전력·냉각·네트워크·건설을 포함한 ‘거대한 공장’에 가깝습니다. 그 공장을 짓고 확장하려면 구리, 알루미늄, 철강, 각종 건설자재뿐 아니라, 전력 생산과 운송을 위한 에너지 수요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3포틴 리서치(3Fourteen Research)의 공동창업자이자 전략가인 워런 파이스(Warren Pies)는 산업용 금속과 천연가스 수요가 AI·데이터센터 구축과 연결돼 있다고 봤습니다. 특히 천연가스는 전력 생산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데이터센터 확장이 빨라질수록 “전력의 원료”로서 다시 주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구리의 움직임이 상징적입니다. 구리는 건설과 전기·전자, 그리고 송배전망에 광범위하게 쓰입니다. 최근 구리 가격은 기록적 수준 근처에서 거래되고 있고, 지난주에는 파운드당 6달러를 넘어선 뒤에도 강세가 이어졌다고 언급됩니다. 시장에서는 이 랠리가 계속될 수 있다고 보는 관측도 적지 않습니다.
웰스파고 인베스트먼트 인스티튜트(Wells Fargo Investment Institute)의 글로벌 전략가 게리 슐로스버그(Gary Schlossberg)는 구리 쪽에서는 공급 차질(supply disruptions)과 데이터센터 관련 수요가 동시에 지지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즉, 수요가 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도 매끄럽지 않다면, 가격이 조금 오르고 끝나기 보다 더 길게 압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달러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와 인플레이션의 잔상
귀금속 강세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이른바 ‘달러 디베이스먼트(dollar debasement) 트레이드’입니다. 쉽게 풀면, 정부 부채와 재정적자가 커질수록 통화의 실질 가치(구매력)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그 우려가 금 같은 실물자산 선호를 키운다는 논리입니다. 파이스는 이런 흐름이 금과 다른 귀금속을 지지한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환경에서는 원자재가 주식과 함께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강한 분산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봤습니다.
또 하나는 인플레이션입니다. 역사적으로 실물자산은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는 국면에서 주식 대비 상대 성과가 의미 있게 좋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됩니다. 결국 시장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것은 “물가가 다시 올라갈 조짐이 있느냐”입니다.
그래서 2026년 1월 중순에 예정된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가 중요해집니다. 화요일에는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되고, 일부 월가에서는 작년 말 미국 정부 셧다운이 10~11월 지표에 왜곡을 만들었던 영향이 이어지면서, 이번 CPI가 상방으로 치우쳐 보일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1월 14일 수요일에는 11월 소매판매와 생산자물가지수(PPI) 발표가 예정되어 있어, 물가 압력과 경기 탄력(소비가 버티는지)을 동시에 확인하게 됩니다.
베네수엘라 변수는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어도 ‘불확실성 프리미엄’은 커집니다
이번 원자재 강세의 촉매 중 하나로 거론되는 사건이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입니다. 애폴론 웰스 매니지먼트(Apollon Wealth Management)의 CIO 에릭 스터너(Eric Sterner)는 유가와 귀금속이 함께 오르는 배경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커졌다는 점을 지목하면서, 특히 베네수엘라 작전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베네수엘라를 이해하는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베네수엘라는 과거 주요 산유국이었고,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 생산은 크게 줄어 하루 100만 배럴 이하 수준으로 내려온 것으로 언급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불안이 커지면 단기적으로 생산이 더 흔들릴 가능성이 있고, 이것이 유가에 불확실성 프리미엄을 얹을 수 있습니다.
다만 스터너는 동시에, 전 세계 원유시장이 이미 공급이 넉넉한 쪽으로 기울어 있다면, 베네수엘라 변수가 글로벌 유가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즉, 가격의 절대 수준보다 심리와 변동성이 더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장면도 언급됩니다. 미국 주식시장은 2026년 첫 완전한 거래주를 플러스로 마감했는데, 그날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정책에 대해 시장이 예상했던 결정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 투자심리에 영향을 준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2차 공격” 계획을 취소했다고 말한 것도 함께 거론됩니다. 이런 뉴스 흐름은 원자재 시장이 단순히 수급이 아니라, 정치 이벤트에 반응하는 구간에 들어섰음을 보여줍니다.
2000년대 초반의 데자뷔: 이번에도 ‘투자 붐’이 원자재를 밀어 올릴 수 있을까요
BNY(뱅크오브뉴욕멜론)의 미주 지역 거시전략가 존 벨리스(John Velis)는 지금의 환경이 2000년대 초반에 나타났던 원자재 슈퍼사이클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합니다. 당시에는 중국의 고성장과 인프라 투자 확대가 큰 동력이었는데, 지금은 그 역할을 AI와 테크 인프라 자본지출 붐이 일부 대신하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벨리스는 하드애셋 가격 상승을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지정학 리스크뿐 아니라, 전 세계적 통화공급(Money supply) 증가, 그리고 전 세계 중앙은행 정책 기대가 조금 더 비둘기파(완화적)로 기울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들었습니다. 금리 인하 기대가 살아 있으면, 금처럼 이자가 나오지 않는 자산이 상대적으로 덜 불리해지고, 동시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남아 있으면 실물자산 선호가 강화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작년의 귀금속 랠리가 올해는 산업용 금속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하며, 향후에는 에너지로도 확산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2026년 글로벌 성장 심리가 개선되면, 산업 생산과 물류가 늘고, 그만큼 에너지 수요가 더 탄탄해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원자재는 늦었나?”가 아니라 “어떤 원자재가 구조적으로 필요한가?”를 질문해야 할 때
이 흐름을 단순히 “원자재가 오르니까 따라가야 하나요?”로만 보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지금 시장이 보여주는 진짜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첫째, AI·데이터센터라는 구조적 수요가 어떤 원자재를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느냐입니다.
구리처럼 전력과 연결되는 금속, 전력 생산과 연결되는 연료(천연가스 등), 그리고 건설과 운송에 필요한 소재는 “한 시즌 유행”보다 더 긴 호흡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둘째, 통화와 재정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로 지속되느냐입니다.
금과 은은 ‘산업 수요’만이 아니라 ‘가치 저장’ 성격이 함께 작동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통화 신뢰가 흔들릴수록 더 강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셋째, 지정학이 가격에 얹는 프리미엄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입니다.
공급 자체가 줄지 않더라도, 불확실성이 커지면 가격은 ‘위험 비용’을 포함하게 됩니다. 최근 베네수엘라 변수가 상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벨리스는 귀금속을 제외한 하드애셋과 주식의 상대 밸류에이션을 봤을 때, 이 테마에 진입하기에 매력적인 가격대가 열려 있을 수 있다고도 언급합니다. 동시에 산업적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구간에서는 원자재가 단순 투기 대상이 아니라, 기업의 투자와 소비 구조 변화에 따라 현실적으로 ‘필요해지는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원자재=경기’라는 공식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한국 투자자에게 원자재는 종종 “경기가 좋아지면 오르고, 나빠지면 빠지는 자산”으로 단순화되곤 합니다. 그런데 지금 시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 공식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AI 데이터센터라는 구조적 투자가 계속된다면, 경기 사이클과 별개로 특정 원자재 수요가 꾸준히 유지될 수 있고, 통화·재정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금·은은 경기와 무관하게 ‘보험 자산’ 성격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결국 2026년의 원자재 강세를 이해하는 핵심은 “가격이 올랐다”가 아니라, 가격을 밀어 올리는 힘이 복수의 축(인프라·통화·지정학)으로 분산돼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단기 조정이 와도, 시장의 관심이 쉽게 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원자재를 살까 말까”보다, 내 포트폴리오가 실물자산과 금융자산의 균형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지부터 점검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참고 출처: Stocks are signaling that another commodities ‘supercycle’ is afoot in 2026 - MarketWat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