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트럼프 랠리 이후 급락한 이유: AI 데이터센터 CPU 공급 공백과 14A 파운드리 불확실성

AI 수요가 아니라 ‘공급의 공백’이었습니다

인텔(Intel, INTC)은 한동안 “미국이 다시 키우는 반도체 챔피언”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인텔에 약 90억달러에 달하는 지원을 약속하고, 미국 중심의 기술·제조 재편 흐름에서 인텔을 전면에 세우자 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달아올랐습니다. 투자자들은 새 주문이 몰릴 것이라고 믿었고, 주가는 불과 5개월 만에 약 120% 뛰었습니다.

그런데 기대를 떠받치던 ‘현금 흐름’이 실제로 확인되는 순간, 주가는 오히려 무너졌습니다. 인텔이 AI 데이터센터용 프로세서 수요 급증을 제때 소화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하루에 17% 급락했고, 시가총액은 460억달러 이상 증발했습니다. 한마디로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수요가 왔는데 팔 물건이 부족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인텔 주가가 급락한 배경을 AI 데이터센터 CPU 수요 대응 실패, 구형 라인 축소, 14A 고객 부재와 파운드리 딜레마로 정리합니다.

AI 시대의 오해: GPU만 늘리면 끝이 아니었습니다

생성형 AI 붐을 이야기할 때 흔히 떠올리는 주인공은 엔비디아(Nvidia, NVDA)나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dvanced Micro Devices, AMD)처럼 GPU를 만드는 기업들입니다. GPU는 수많은 연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데 강해, AI 학습과 추론에서 핵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2024~2025년 AI 투자금의 초점도 GPU에 강하게 쏠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 하반기부터 대형 수요처들이 중요한 현실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픈AI(OpenAI), 아마존웹서비스(Amazon Web Services, AWS), 구글(Google) 같은 곳이 생성형 AI를 대규모로 운영해 보니, GPU만큼이나 CPU(중앙처리장치)의 수량과 성능이 전체 효율을 좌우했습니다. CPU는 서버의 ‘중앙 두뇌’에 가깝습니다. 

데이터 이동, 작업 분배, 시스템 운영을 떠받치는 축이 약하면 GPU가 많아도 병목이 생깁니다. AI 인프라가 커질수록 “좋은 CPU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주문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텔이 놓친 ‘쉬운 승리’: 구형 CPU 라인을 너무 빨리 접었습니다

아이러니는 인텔이 CPU 강자라는 점입니다. AI 데이터센터에서 CPU 수요가 늘어나는 흐름은 인텔에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인텔은 그 기회를 ‘공급 능력’ 문제로 스스로 놓쳤습니다.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구형 데이터센터 CPU 생산 능력을 크게 줄였고, 에메랄드 래피즈(Emerald Rapids)와 그래나이트 래피즈(Granite Rapids) 같은 이전 세대 제품을 만들던 고가 장비(툴)를 퇴역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수천 개 단위로 더 달라”는 주문이 몰렸지만, 이미 생산 라인이 줄어든 뒤였습니다.

데이비드 진스너(David Zinsner)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한동안 사실상 “재고로 버티는 운영”에 가까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신규 생산을 확 늘리기보다는 남아 있는 재고를 풀어 주문을 맞추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재고가 바닥났고, 인텔은 이제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2026년에 장비 투자 지출을 2025년보다 크게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급한 불은 끌 수 있어도, 수요가 폭발하던 타이밍에 납품을 못 했다는 사실은 고객 신뢰와 시장 평가에 오래 남습니다.

스테이시 라스곤(Stacy Rasgon) 반도체 애널리스트(번스타인·Bernstein)가 “분위기와 트윗으로 주가가 수직 상승했다”는 취지로 말한 대목은, 결국 운영의 기본기가 확인되는 순간 ‘서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짚습니다.


‘구조조정’과 ‘수요 전환’이 엇갈린 타이밍

현재 인텔을 이끄는 립부 탄(Lip-Bu Tan) 최고경영자(CEO)는 2025년 3월 취임했습니다. 전임자인 패트릭 겔싱어(Pat Gelsinger)는 2024년 12월 은퇴했습니다. 겔싱어 체제에서 인텔은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을 키우겠다며 수십억달러를 들여 신규 공장을 짓고 고객을 유치하려 했지만, 기대했던 고객들이 충분히 붙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제조 사업은 막대한 고정비를 떠안았고, 제조 부문은 지난해 100억달러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동시에 인텔은 AI에 최적화된 고성능 칩 개발 경쟁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탄 CEO는 이 ‘구멍 난 재무구조’를 막기 위해 강한 비용 절감에 나섰습니다. 2025년 7월에는 인력 15% 감원을 발표했고, 유럽 신규 공장 투자 계획을 접었으며,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 건설도 더 미뤘습니다. 

구형 기술에 대한 지출을 억제하고 최신 칩 생산능력 확대도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다만 이 보수적 운영이 “AI 데이터센터용 CPU 수요 급증”이라는 변곡점과 겹치면서, 오히려 시장이 요구한 물량을 맞추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파운드리의 또 다른 숙제: 14A 고객이 없으면 투자를 못 합니다

인텔의 장기 과제는 파운드리 사업입니다. 인텔은 차세대 제조 공정인 14A를 통해 제조 경쟁력을 되찾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지만, 아직 이 공정에 확실한 고객이 붙지 않은 상태입니다. 

여기서 전형적인 ‘치킨게임’이 발생합니다. 고객이 있어야 새 공장 투자를 정당화할 수 있는데, 생산능력과 일정이 확실해야 고객도 계약을 맺습니다. 

인텔은 고객이 확보될 때까지 신규 시설 투자를 미루며 일정이 뒤로 밀리는 모양새이고, 반면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TSM)는 미국 내 신규 공장 투자를 계속 늘리며 격차를 벌릴 여지가 생깁니다.


‘구조적 지원’은 출발선일 뿐, 결승선은 실행력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 지원을 약속하며 연방 지원금을 미국 정부의 지분 형태로 전환하는 구상을 추진한 것은 시장의 기대를 키웠습니다. 여기에 소프트뱅크(SoftBank)가 추가로 20억달러를 투입했고, 엔비디아가 맞춤형 칩 설계 협력에 나서는 등 외부의 관심도 커졌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에서 평판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물량을 납품할 수 있는가”입니다.

인텔이 회복의 길로 가려면 단기적으로는 CPU 공급 병목을 빠르게 해소해 수요를 매출로 연결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14A 공정에 실제 고객을 붙이고, 파운드리 사업을 ‘손실의 구덩이’에서 ‘성장 엔진’으로 바꾸는 전환이 필요합니다. 

정책 지원과 시장의 기대는 바람을 만들어 줄 수 있지만, 그 바람을 전진으로 바꾸는 것은 공정·설비·고객이라는 기본기입니다.


참고출처: How Intel Came Crashing Back to Earth After Its Trump Bump - W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