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기 때 비트코인보다 금인가: 장기국채 흔들릴 때 ‘진짜 안전피난처’가 드러납니다
비트코인도, 국채도 아니었습니다
세계가 흔들릴 때 투자자들이 찾는 자산을 흔히 ‘안전피난처’라고 부릅니다. 전쟁·테러·외교 충돌 같은 지정학적 사건이 터지면 주식처럼 경기와 심리에 민감한 자산은 흔들리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자산이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흐름이 자주 나타납니다.
오랫동안 그 역할을 대표해 온 것은 미국 국채, 특히 장기 미국 국채였습니다. “미국 정부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과 이자는 받는다”는 믿음이, 불확실한 순간마다 돈을 국채로 몰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시장은 한 가지 변화를 보여줍니다. 불안이 커졌을 때 ‘국채로 피한다’는 공식이 예전만큼 매끈하게 작동하지 않고, 그 빈자리를 금이 채우는 장면이 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비트코인(Bitcoin, BTCUSD)이 금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름은 “디지털 금”처럼 들려도, 위기 국면에서 실제로 안전한 움직임을 보여주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날, 금은 올랐고 비트코인과 장기국채는 떨어졌습니다
최근 시장의 단면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2026년 1월 20일입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그린란드(Greenland)를 두고 강경한 발언을 내놓으며 긴장이 커지자, 위험자산 선호가 급격히 식었습니다. 이 날 S&P500 지수는 2.1% 하락했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전통적 피난처’로 여겨져 온 장기 미국 국채도 함께 밀렸다는 점입니다. 장기 국채 가격이 하루 동안 크게 떨어져, 적어도 2025년 7월 이후 단일 거래일 기준으로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시장에서 장기 미국 국채 흐름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 국채 ETF(iShares 20+ Year Treasury Bond ETF)도 같은 방향으로 약세를 보였습니다.
반면 금은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금 가격은 하루에 3.7% 상승하며 ‘불안할수록 강해지는 자산’의 전형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위기 때 오히려 더 빛난다”고 기대해 온 비트코인은 3.8% 하락했습니다.
금이 강하게 오르는 날, 비트코인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는 점은 ‘비트코인이 금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꽤 불편한 증거가 됩니다.
‘디지털 금’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변동성입니다
비트코인을 “금 2.0”이라 부르는 시각은 몇 년 전부터 꾸준했습니다. 발행량이 제한돼 있고(희소성), 특정 국가의 통화정책에 직접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하지만 안전피난처의 핵심은 ‘이야기’가 아니라 ‘가격의 행동’입니다. 위기 때 자산이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가장 냉정한 시험대입니다.
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 푸쿠아 경영대학원(Fuqua School of Business)의 재무학 교수 캠벨 하비(Campbell Harvey)는 이 지점에서 단호합니다. 비트코인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든, “안전피난처”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하비 교수가 강조한 첫 번째 포인트는 변동성입니다. 비트코인의 역사적 변동성은 금보다 최소 4배 이상 컸습니다. ‘안전’이라는 단어가 붙으려면, 위기 때 가치 보존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자산은 그 역할을 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짧은 역사 속에서도 비교적 짧은 기간에 60% 이상 급락한 사례가 6번이나 있었다고 지적됩니다. 이런 자산은 위기 때 방어해 주는 ‘리스크 오프(risk-off)’ 자산이라기보다, 오히려 위험선호가 강할 때 더 잘 오르는 ‘리스크 온(risk-on)’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주식과 비슷하게 “분위기가 좋을 때는 급등하지만, 충격이 오면 더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쪽에 가까워지는 셈입니다.
금과 비트코인은 ‘대체’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이 금을 대체하려면, 최소한 위기 국면에서 금과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데이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2013년 이후의 모든 12개월 이동 구간을 기준으로 보면, 금과 비트코인의 상관계수는 -27%였습니다.
쉽게 말해 두 자산은 꽤 자주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금이 오를 때 비트코인이 반드시 오르는 구조가 아니라면, “금 대신 비트코인을 들고 있으면 비슷한 방어가 된다”는 전제가 흔들립니다.
이 차이는 지정학적 위험과의 관계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Economic Policy Uncertainty Index, EPU)는 박빙의 대선, 걸프전, 9·11 테러, 리먼브러더스(Lehman Brothers) 파산, 2011년 미국 부채한도 협상 같은 굵직한 충격 국면에서 크게 뛰는 지표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정학적 위험 지수(Geopolitical Risk Index, GPR)는 전쟁·테러·국가 간 긴장 고조처럼 국제관계를 흔드는 사건의 ‘위협과 현실화, 확전’을 측정합니다.
하비 교수의 분석에서 금은 EPU와 GPR 모두와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지만, 비트코인은 두 지수와 모두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불안이 커질수록 금으로는 돈이 모이기 쉬운데, 비트코인은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관측된다는 의미입니다.
왜 ‘국채’가 예전만큼 든든한 방패가 아니게 됐을까요
“위기 때는 국채”라는 공식이 흔들리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장기 국채의 가격 구조를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국채 금리(수익률)가 오르면 기존에 발행된 낮은 금리 국채의 매력은 떨어지고, 그 결과 국채 가격은 하락합니다. 특히 만기가 긴 장기 국채는 금리 변화에 더 민감합니다. 그래서 공포가 커져도 “금리가 오르는 환경”이 겹치면, 장기 국채는 안전피난처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오히려 주식과 함께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 시장이 보여준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투자자들이 미국 장기 국채를 예전처럼 ‘위기 때 자동으로 수익을 주는 방패’로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공백이 생길수록, 오랜 기간 위기 국면에서 반복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금이 더 뚜렷한 선택지로 부각됩니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아직 그 자리를 대체하기엔 가격 행동이 너무 공격적이고, 위기와의 관계도 금과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확인됩니다.
결국 질문은 “불안할 때 지켜주는가”입니다
어떤 자산이든 장기적으로는 여러 서사가 붙습니다. 기술혁신, 통화대체, 희소성, 새로운 금융질서 같은 이야기가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전피난처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능’으로 평가받습니다. 전쟁·테러·외교 충돌 같은 충격이 왔을 때, 포트폴리오의 손실을 줄여주고 현금을 지켜주는 자산인가가 핵심입니다.
최근 시장은 금이 그 기능을 가장 일관되게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국 장기 국채가 예전만큼 확실한 방패로 작동하지 못하는 순간이 늘수록, 금의 역할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자산일 수 있지만, ‘불안의 순간에 기대는 마지막 자산’이라는 의미의 안전피난처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냉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 출처: Why gold is the only go-to safe haven from global turmoil — not bitcoin or bonds - MarketWat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