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소프트웨어를 먹는다? 월가가 SaaS를 다시 평가하는 이유와 투자자가 봐야 할 포인트
이제 월가가 두려워하는 건 ‘AI가 소프트웨어를 먹는’ 시나리오입니다
지난 10~15년 동안 미국 주식시장에서 ‘비즈니스 소프트웨어’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서사를 가졌습니다. 회사들이 하는 일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영업·마케팅·회계·인사·고객관리까지 “소프트웨어로 운영하는 기업”이 표준이 됐고, 그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구독형 매출(매달/매년 반복해서 들어오는 매출)을 무기로 꾸준히 몸집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2026년 초, 시장의 걱정이 한 단계 바뀌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AI가 소프트웨어의 자리까지 가져가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뒤집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SaaS)’는 왜 그렇게 사랑받았나
미국 주식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이 강했던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이 기업들은 대체로 SaaS(Software as a Service) 모델을 쓰는데, 쉽게 말해 “프로그램을 한 번 팔고 끝”이 아니라 “매달 구독료를 받는 멤버십”처럼 돈을 받습니다.
넷플릭스처럼 구독료가 꾸준히 들어오면 회사는 매출 예측이 쉬워지고, 투자자도 미래를 계산하기 쉬워집니다. 그래서 시장은 이런 기업에 더 높은 ‘밸류에이션(주가가 얼마나 비싸게 거래되는지)’을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멀티플(multiple)입니다. 초보 투자자 관점에서는 “이 회사의 이익이나 매출 대비 주가가 몇 배냐”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SaaS 기업은 성장성이 높고 매출이 반복되니, 같은 1달러의 매출이라도 더 비싼 값을 인정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바로 이 ‘비싼 값’이 정당한지 시장이 다시 묻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6개월, 소프트웨어의 ‘굴욕’이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이번 흐름이 단발성 소동이 아니라는 근거로, “최근 6개월 동안 소프트웨어 주식이 S&P 500 대비 기록적으로 부진했다”는 데이터가 제시됩니다. 즉, 시장 전체가 오르내리는 와중에도 소프트웨어는 유독 더 약했고, 그 격차가 통계적으로도 가장 컸다는 뜻입니다.
이건 투자자 심리로 치면 이런 장면과 비슷합니다. 동네에서 가장 안정적인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었고, 사람들은 “여긴 망할 리 없다”고 생각해 비싼 권리금까지 주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새로 생긴 자동화 카페가 주문·결제·제조까지 훨씬 빠르게 해내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럼 프랜차이즈 카페가 받던 프리미엄이 계속 유지될까?”라는 질문이 튀어나옵니다. 바로 그 질문이 소프트웨어 섹터에 던져진 셈입니다.
‘클로드 코워크’가 보여준 “AI가 소프트웨어 기능을 삼킬 수 있다”는 그림
이번 주 시장이 특히 과민하게 반응한 직접 계기는 앤스로픽(Anthropic)이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 관련 플러그인 도구를 대거 공개하면서입니다. 판매, 법률, 데이터 분석 같은 영역으로 AI 활용을 더 깊게 밀어 넣는 도구들이 한꺼번에 나오자, 투자자들은 즉각 “그럼 기존에 그 기능을 팔던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어떻게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월가가 걱정하는 대상이 ‘AI 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회사’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단순한 SaaS 기업뿐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사실상 소프트웨어 회사처럼 변신해 온 전통적 비즈니스 서비스 기업까지 매도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우리 회사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정보 서비스야”라고 말해도, 수익 구조가 소프트웨어 구독처럼 굴러가면 시장은 같은 바구니에 넣어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디까지 번졌나: 법률·정보·IT서비스까지 ‘묶음 매도’가 발생했습니다
매도는 법률·정보 서비스 쪽에서 먼저 두드러졌습니다.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 TRI), 렐렉스(RELX) 같은 정보 서비스 기업이 하락했고, 온라인 법률 서비스 리걸줌(LegalZoom, LZ), CS 디스코(CS Disco, LAW)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후에는 카프제미니(Capgemini, CAP), 인포시스(Infosys) 같은 IT 서비스 기업으로도 불안이 번졌습니다.
이 흐름을 일상생활로 풀면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습니다. 예전에는 변호사 사무실이 판례 검색과 문서 작성에 특정 유료 서비스를 쓰고, 그 서비스에 매달 비용을 냈습니다. 그런데 AI가 “판례 요약, 계약서 초안, 리서치”를 더 싸고 빠르게 해주면, 그 유료 서비스의 ‘필요성’이 줄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시장은 “이 회사 매출의 방어력이 약해지겠다”고 판단해 주가를 먼저 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실제 매출이 오늘 당장 줄었느냐가 아니라, 미래의 협상력이 약해질 수 있느냐입니다.
‘구독 모델’의 강점이 동시에 약점이 되는 순간: 해지율과 가격 결정권
SaaS의 핵심은 반복 매출인데, 이 반복 매출이 유지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고객이 계속 구독을 유지해야 합니다(해지율이 낮아야 합니다).
둘째, 회사가 구독료를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가격 결정권이 있어야 합니다).
AI가 위협하는 부분은 바로 이 두 지점입니다. 고객이 “AI로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하면 구독을 줄이거나 해지할 수 있습니다. 또 “이 가격은 너무 비싸니 깎아달라”고 요구할 명분이 생깁니다. 그러면 시장이 그동안 인정해 온 높은 멀티플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왜 이렇게 ‘무차별 매도’가 나왔나: 해자(모트)가 깎일 수 있다는 구조적 공포
분석가들이 이번 매도를 “무차별적”이라고 부른 이유는, 개별 기업의 실적이 갑자기 나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AI 시대에는 경쟁 구도가 바뀐다”는 공포가 섹터 전체로 번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월가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 해자(moat)입니다.
성 주변의 해자처럼, 경쟁사가 쉽게 못 넘어오게 만드는 방어벽을 뜻합니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그동안 데이터 축적, 높은 전환 비용(바꾸기 귀찮고 위험함), 네트워크 효과 같은 해자로 방어해 왔습니다. 그런데 AI가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면, 그 해자가 얕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집니다.
다만 모든 기업이 같은 위험에 놓인 것은 아닙니다. 윌리엄 블레어의 애널리스트는 이번 매도가 “새로운 AI 패러다임 아래 정보 서비스 기업들의 경쟁 지위와 해자에 대한 구조적 우려”를 반영한다고 짚으면서도, S&P 글로벌(S&P Global, SPGI), 무디스(Moody’s, MCO), 에퀴팩스(Equifax, EFX), 트랜스유니온(TransUnion, TRU), 베리스크 애널리틱스(Verisk Analytics, VRSK) 같은 기업들까지 함께 팔린 것은 “특히 비합리적”일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이 기업들은 AI를 활용해 오히려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여지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AI가 모든 소프트웨어를 다 먹는다”가 아니라, AI 때문에 ‘가격을 받는 방식’이 바뀌면서 어떤 소프트웨어는 힘이 빠지고, 어떤 소프트웨어는 오히려 힘이 세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외의 연결고리: 소프트웨어가 흔들리자 ‘사모대출’ 주식도 같이 흔들렸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소프트웨어 매도가 블루 아울 캐피털(Blue Owl Capital, OWL) 같은 사모대출·대체투자 운용사 주가까지 끌어내렸다는 점입니다. 뭔가 멀어 보이지만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배경 개념 하나가 필요합니다. BDC(Business Development Company)는 미국에서 개인 투자자가 ‘사모대출(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에 간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상장 구조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런 BDC들을 운용하는 곳이 사모대출 운용사들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분석에 따르면, BDC들의 전체 대출 노출 중 약 25%가 기술 섹터(소프트웨어 포함)에 걸려 있습니다. 즉, 소프트웨어 기업이 흔들리면 “이 기업들에 빌려준 돈은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생기고, 그 불안이 대출을 굴리는 운용사 주가에도 번질 수 있습니다.
일상 비유로는 이렇습니다. 친구가 식당을 운영하는데, 친구에게 직접 돈을 빌려준 사람(채권자)도 있고, 그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모아 굴리는 ‘대출 조합’을 운영하는 사람(운용사)도 있습니다. 식당 장사가 흔들리면, 식당 주인뿐 아니라 돈을 빌려준 조합 운영자까지 “부실이 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습니다. 이번에 소프트웨어 불안이 사모대출 쪽으로 번진 메커니즘이 이런 구조입니다.
“지나치게 앞서간 공포”일 수도 있습니다: 실적은 괜찮다는 반론과 ‘과매도’ 신호
흥미롭게도, 일부 애널리스트는 최근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실적 자체는 “탄탄하다”는 평가를 내놓습니다. 그런데도 주가가 빠지는 건, 시장이 지금의 숫자보다 “AI가 만들어낼 다음 구조 변화”를 더 크게 가격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즈호의 애널리스트는 “최근 소프트웨어 실적은 견조한데 매도 이유가 더 혼란스럽다”고 했고, 만약 나중에 실제로 성장 둔화나 “AI가 핵심 사업을 잠식한다”는 고백 같은 확실한 악재가 나오면 지금의 매도는 ‘아이들 장난’처럼 보일 수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이 말은 반대로, 시장이 지금 매우 예민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단서로, 기술 소프트웨어 ETF인 아이셰어즈 확장 테크-소프트웨어 ETF(iShares Expanded Tech-Software Sector ETF, IGV)이 S&P 500 대비 역사적으로 가장 ‘과매도(oversold)’ 수준에 근접했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과매도는 “너무 많이 팔려서 단기 반등이 나올 수 있다”는 기술적 신호로 종종 해석됩니다. 실제로 제프리스의 트레이더는 “이 정도로 부정적인 심리는 본 적이 없다”며 소프트웨어에 ‘매서운 반등’ 가능성을 거론합니다.
그리고 의외의 인물도 등장합니다. 엔비디아(Nvidia, NVDA)의 최고경영자 젠슨 황(Jensen Huang)은 투자자들이 소프트웨어를 한꺼번에 던지는 것에 놀랐다고 말하며, “AI가 소프트웨어 회사를 대체한다는 생각은 가장 비논리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증명될 것”이라는 취지로 반박합니다. 즉, AI가 소프트웨어를 없애기보다, 소프트웨어가 AI를 담아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AI가 소프트웨어를 먹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가격표가 바뀐다’입니다
이번 소프트웨어 매도에서 핵심을 하나로 압축하면, “AI가 소프트웨어를 전부 없앤다”라기보다 소프트웨어가 돈을 벌던 방식이 바뀔 수 있다는 공포입니다. 기업 고객이 소프트웨어에 지불하던 비용의 일부가 AI 플랫폼으로 이동하거나, 기존 소프트웨어가 AI 기능을 붙이면서도 가격 결정권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에 빠르게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포는 소프트웨어 기업에만 머물지 않고, 그 기업들에 돈을 빌려준 사모대출 생태계까지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은 더 민감해졌습니다.
미국 주식을 처음 접하시는 분이라면, 이 이슈를 “AI 유행으로 소프트웨어가 끝났다”로 단순화하기보다, 이렇게 보시면 더 안전합니다.
첫째, AI는 일부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빠르게 대체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지만 모든 소프트웨어가 같은 운명을 맞는 것은 아니고, 데이터·규제·신뢰·워크플로우에 깊게 박힌 기업은 AI를 도입해 오히려 더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셋째, 시장은 지금 ‘실적’보다 ‘미래 가격표’를 먼저 흔들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놓고 보시면, 왜 월가가 소프트웨어를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지금은 너무 과하게 팔렸다”는 말이 나오는지까지 한 화면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참고자료 및 출처:
Software ate the world. Now, Wall Street is worried AI will eat software. - MarketWat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