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마(FIG) 실적 분석: 매출 서프라이즈와 AI 파트너십이 ‘턴어라운드’ 신호가 되는 이유
“AI가 위협”이 아니라 “AI로 다시 가속”이 될 수 있습니다
피그마(Figma, FIG)는 상장 직후 ‘디자인 소프트웨어의 차세대 표준’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실제로 2025년 7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첫날 주가가 약 250% 급등하며 시장의 관심이 폭발했습니다. 그런데 뜨거웠던 만큼 식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2026년 들어 주가가 약 37% 떨어졌고, 공모가 33달러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상장 둘째 날 기록했던 사상 최고 장중 가격과 비교하면 80% 이상 낮은 수준까지 내려온 셈입니다.
이 급격한 ‘기대의 후퇴’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피그마가 나쁜 회사가 됐기 때문이 아니라, 성장주에 붙는 프리미엄이 AI 불확실성 속에서 빠르게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최근 발표된 실적과 가이던스는 “이 재평가가 끝까지 부정적으로만 흐르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숫자가 먼저 바꾼 분위기: “매출 성장 둔화” 우려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가장 중요한 변화는 매출입니다. 시장은 피그마가 4분기 매출 2억9,300만 달러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봤지만, 실제로는 3억 38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40%입니다.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성장률이 높다’는 말은 흔하지만, 예상치를 넘어서는 성장률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투자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성장 둔화 그 자체보다, “둔화가 생각보다 빨리, 생각보다 크게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숫자는 최소한 그 우려를 한 박자 늦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수익성도 비슷한 메시지를 줍니다. 조정 주당순이익은 8센트로 제시됐고, 이는 시장이 기대한 7센트를 웃돌았습니다. 달러 기준으로도 조정 이익은 4,300만 달러로, 예상치(약 3,500만 달러)를 상회했습니다. 상장 이후 스톡옵션 등 주식 보상 비용이 크게 잡히는 시기임을 감안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 셈입니다.
물론 회계 기준 순손실은 2억2,660만 달러로 나타났고, 예상보다 손실이 더 컸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다만 이 구간의 성장주는 종종 “회계 이익보다 현금·조정 이익”에 시장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번에는 매출과 조정 이익이 동시에 기대를 넘어서며 투자 심리가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실적 발표 이후 시간외 거래에서 주가가 약 15% 상승한 흐름은 이런 심리를 보여줍니다.
시장이 가장 궁금해했던 질문: “AI가 피그마를 대체하나”를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피그마 주가를 눌렀던 가장 큰 불안은 “AI가 디자인 툴을 대체하면 어떡하나”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디자인 과정에서 반복 작업이 많은 만큼, 생성형 AI가 파고들 여지가 크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피그마가 최근 보여주는 전략은 이 우려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AI를 파트너로 끌어들여 제품의 일부로 흡수하는 방향입니다.
대표적인 움직임이 앤트로픽(Anthropic)과의 협업입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Claude) 모델을 활용해, AI가 만들어낸 코드를 실제 디자인으로 연결하는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여기에 오픈AI(OpenAI)와 알파벳(Alphabet, GOOGL)의 제미나이(Gemini) 생태계와의 접점도 강조됩니다. 이 방식의 핵심은 “피그마가 자체 AI만으로 승부한다”가 아니라, 여러 AI를 받아들이는 작업 공간(workspace)으로 자리 잡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이 차이가 큽니다. 특정 AI 모델의 경쟁력에 회사의 운명이 좌우되는 구조는 불안정합니다. 반대로 기업 고객이 원하는 모델을 선택해도, 그 결과물이 결국 피그마의 협업·디자인·관리 환경으로 들어오게 만든다면, 피그마는 ‘모델 경쟁’이 아니라 ‘업무 표준’의 지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숫자로 확인되는 방어력: “기존 고객이 더 많이 쓴다”는 지표가 강합니다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에서 진짜 힘은 신규 고객보다 기존 고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그마가 공개한 핵심 지표 중 하나가 순달러유지율(net dollar retention) 136%입니다. 아주 쉽게 풀면, 1년 전에 돈을 내던 큰 고객들이 이번 분기에는 같은 고객 집단만 놓고 보더라도 지출이 36% 더 늘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이 지표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고객이 “해지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수준을 넘어, 조직 내 사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둘째, AI 기능이 ‘데모는 멋있지만 예산은 못 늘리겠다’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유료 사용을 자극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피그마는 기업(엔터프라이즈) 고객 쪽에서 유료 버전의 피그마 메이크(Figma Make) AI 도구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고, 대기업 부문에 모멘텀이 크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AI 때문에 약해진다”는 서사는, “AI 때문에 더 깊게 들어간다”는 서사로 바뀔 여지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도 주가가 ‘쉽게’ 돌아서기 어려운 이유: 밸류에이션과 경쟁입니다
좋은 숫자가 나와도 주가가 곧바로 장기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가격입니다.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올해 예상 이익 기준으로 약 90배에 가까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성장주에서 고평가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시장이 불확실할수록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합니다. 즉, 한두 분기 깜짝 실적보다 지속적으로 가이던스를 지키고 상향하는 흐름이 필요해집니다.둘째는 경쟁입니다.
디자인·협업 도구 시장은 진입 장벽이 생각보다 낮아 보이기 때문에, 사용성이 좋아지면 빠르게 점유율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특히 캔바(Canva)는 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거론되며 존재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시장이 피그마를 다시 믿으려면, 단순히 “AI를 붙였다”가 아니라 “AI 시대에 협업 디자인의 표준이 더 공고해졌다”는 확신을 줘야 합니다.
어도비 인수 무산의 ‘그늘’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피그마가 다시 주목받는 과정에서 어도비(Adobe, ADBE) 이야기는 빠지기 어렵습니다. 어도비는 2022년 피그마를 20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지만, 반독점 이슈로 1년 뒤 거래를 접었습니다. 그 이후 피그마는 독립 기업으로 상장했고, 시장가치는 현재 약 120억 달러 수준으로 거론됩니다.
이 숫자는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을 동시에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인수가격 대비 크게 낮아졌다”는 점에서, 시장이 성장성에 더 보수적으로 변했음을 뜻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두 자릿수 억 달러 규모의 플랫폼 가치가 유지된다”는 점에서, 제품의 지속력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됩니다.
지금 투자자에게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한 문장’입니다
피그마의 방향을 정리하면 결국 이 질문으로 모입니다. AI가 디자인을 자동화할수록, 사람과 팀은 피그마 같은 협업 공간을 더 필요로 하게 될까, 아니면 덜 필요로 하게 될까라는 질문입니다.
최근 실적은 “덜 필요로 한다”는 가정이 너무 빨리 가격에 반영됐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매출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늘었고, 기존 고객이 지출을 확장하며, 기업 고객에서 유료 AI 도구 사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높은 밸류에이션과 강한 경쟁 구도는 “한 번의 반등”이 아니라 “몇 분기 연속의 증명”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피그마의 다음 단계는 화려한 기능 발표가 아니라, 매출 가속과 고객 확장, 그리고 AI 기능의 유료화가 꾸준히 이어진다는 것을 숫자로 반복 확인하는 과정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과정이 성공한다면, 피그마는 ‘IPO 스타에서 IPO 실망주’로 바뀐 서사를 다시 ‘턴어라운드’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참고 출처:
Figma’s Earnings Offer Hope for a Turnaround After Revenue Surprise - Barr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