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핀테크 피규어(FIGR) 분석: 토큰화 대출이 자본시장을 바꿀 수 있을까

피규어의 실험이 자본시장으로 번질 수 있을까

블록체인은 오랫동안 “가상자산의 기술”로만 오해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금융권에서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주식, 채권, 대출, 부동산처럼 현실 세계의 자산을 더 싸고 빠르게 기록하고 옮기는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서의 블록체인입니다.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피규어 테크놀로지 솔루션스(Figure Technology Solutions, FIGR)입니다. 피규어는 몇 년 만에 주택담보 기반 대출을 ‘토큰화’한 방식으로 약 200억 달러 규모까지 연결했고, 상장 이후 주가가 크게 뛰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다만 기대가 큰 만큼, “대출을 잘하는 회사”를 넘어 “자본시장의 규칙을 바꾸는 회사”로 확장할 수 있느냐가 향후 가치의 핵심이 됩니다.

피규어(FIGR)가 토큰화 주택담보대출로 비용을 낮추고 거래를 단순화하는 방식과, 자본시장 확장의 기회·리스크를 쉽게 정리합니다.

토큰화가 바꾸려는 것은 ‘코인’이 아니라 ‘거래 비용’입니다

금융 거래에서 비용이 크게 드는 이유는,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같은 확인 절차가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대출을 다른 기관이 사가거나, 여러 대출을 묶어 증권화(유동화)하려면 서류·권리관계·담보 설정·선순위 여부 같은 항목을 다시 검증해야 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과정에 중개자도 여러 겹으로 붙습니다.

피규어가 내세우는 토큰화는 이 과정을 “거래 단위에 서류와 기록을 함께 붙여서” 움직이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블록체인에 올라간 토큰 안에 문서와 거래 기록이 담기고, 한 번 기록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 성질(변조가 매우 어려운 구조)을 활용해 반복 검증을 줄이겠다는 구상입니다. 

그 결과 거래는 더 단순해지고, 결제(정산)는 더 빨라지며, 거래가 밤낮없이 이어질 수 있고, 증거금 같은 담보 요구도 줄어들 수 있다고 봅니다.


피규어가 ‘주택담보대출’에서 시작한 이유: 가장 복잡한 서류가 몰리는 곳

피규어의 출발점은 거창한 자본시장 혁신이 아니라, 주택담보 기반의 개인대출 중 하나인 헬록(Home-Equity Line of Credit, HELOC)이었습니다. 설립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마이크 캐그니(Mike Cagney)는 2018년 은행들을 설득해 보려 했지만, 누구도 먼저 도입하려 하지 않았다고 회고합니다. 그래서 피규어는 “스스로 대출을 만들고,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숫자로 보여주는” 길을 택했습니다.

피규어는 자사 디지털 시스템을 통해 대출을 통상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고, 대출 1건당 비용이 약 1,000달러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업계 평균으로 제시되는 1만2,000달러와 비교하면 비용 구조가 완전히 달라지는 셈입니다. 이 효율이 사실이라면, 블록체인의 가치는 “멋진 기술”이 아니라 “원가 절감”이라는 가장 강력한 언어로 증명됩니다.


‘대출을 만드는 회사’에서 ‘대출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피규어 커넥트와 스테이블코인

피규어의 전략은 대출을 잘 팔아 이익을 내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른 대출기관들도 피규어의 블록체인 시스템 위에서 헬록을 만들도록 유도하고, 피규어는 여기서 수수료를 받습니다. 또한 대출을 재판매해 생기는 이익도 수익원으로 언급됩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피규어 커넥트(Figure Connect)입니다. 이는 토큰화된 대출을 투자자들이 거래할 수 있는 2차 시장 성격의 장(場)으로, 블루 아울 캐피털(Blue Owl Capital) 같은 기관 투자자도 참여하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결국 피규어가 원하는 그림은 “대출의 생성→보유→재판매→거래”가 하나의 레일에서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자금 유입을 더 넓히기 위해 스테이블코인도 내놓았습니다. 이름은 YLDS($YLDS)인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돼 있고 현재 수익률이 약 3% 수준으로 언급됩니다.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수단’ 정도로만 떠올리기 쉬운데, 피규어는 이를 “블록체인 레일 위에서 돈이 머무는 방식”으로 연결하려는 의도를 드러냅니다.


피규어의 핵심 자산: 자체 블록체인 프로버넌스와 ‘고립’의 위험

피규어의 시스템은 프로버넌스(Provenance)라는 자체 블록체인에서 돌아갑니다. 피규어는 실물 금융자산에 맞는 블록체인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 이 체인을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지금 금융권에서 쓰이는 블록체인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온도(Ondo), 솔라나(Solana) 같은 공개 네트워크도 언급되고, 특히 캔턴(Canton)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Group), 트레이드웹 마켓스(Tradeweb Markets), 브로드리지 파이낸셜(Broadridge Financial), 나스닥(Nasdaq) 같은 굵직한 금융 인프라 기업들이 사용하는 체인으로 소개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버넌스는 “개발자 생태계가 작다”는 약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체인 밖의 개발자들이 들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않으면, 네트워크 확장에 한계가 생깁니다. 

그럼에도 피규어가 가진 강점은 이미 “실제로 돌아가는 물량”이 있다는 점입니다. 프로버넌스 토큰으로 표현된 활성 대출 자산이 약 150억 달러 수준으로 제시되며, 이는 캔턴의 약 3,500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라는 데이터도 언급됩니다.

즉, 프로버넌스는 ‘고립’이라는 구조적 위험을 안고 있지만, 동시에 ‘실사용 트랙레코드’라는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주가가 오른 이유: 대출 사업이 실제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규어에 대한 기대가 단지 “블록체인 꿈”만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피규어는 2025년 예비 실적을 발표하며 매출이 50% 늘어 최소 5억500만 달러에 이르렀고, 현금 기준 영업이익(현금 운영소득)이 2억5,000만 달러라고 밝혔습니다. 대출이익이 실제로 쌓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가 흐름도 강했습니다. 2025년 9월 주당 25달러에 상장했고, 초기에는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 같은 유명 투자자가 후원자로 포함된 것으로 제시됩니다. 

이후 주가는 크게 뛰었다가 암호화폐 시장 급락 국면에서 조정을 받았지만, 30달러대 중후반에서 거래되며 상장 이후 상당한 상승률을 유지하는 모습이 언급됩니다. 다만 주가가 올해 예상 이익의 39배 수준으로 평가된다는 설명도 함께 나오는데, 기대가 주가에 많이 반영돼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음 시험대: “헬록 밖으로 나갈 수 있나”가 모든 것을 가릅니다

피규어의 가장 큰 질문은 하나입니다. 헬록이라는 특정 상품에서의 성공을, 더 큰 자본시장 영역으로 옮길 수 있느냐입니다. 이 분야는 경쟁자가 훨씬 강합니다. 인터컨티넨털 익스체인지(Intercontinental Exchange, ICE)트레이드웹 마켓스처럼 이미 거래 인프라를 가진 기업부터, 디지털 애셋 홀딩스(Digital Asset Holdings), 알파카(Alpaca), 시큐리타이즈(Securitize) 같은 신생 기업까지 한꺼번에 달려들고 있습니다.

회의적인 시각도 분명합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BAC) 쪽 애널리스트로 언급되는 크레이그 지겐탈러(Craig Siegenthaler)는 대형 은행들이 피규어의 소비자 대출 기술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대안으로 ICE의 제안이 더 설득력 있을 수 있다고 평가한 바가 제시됩니다.

반대로 낙관론의 핵심은 “피규어가 블록체인을 위해 문제를 만든 게 아니라, 실제 문제(대출 처리 비용)를 블록체인으로 풀었다”는 점입니다. 드러켄밀러의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Duquesne Family Office)에서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언급되는 마이클 버클리(Michael Buckley)는 피규어가 헬록 성장만 지속해도 의미가 있고, 다른 개인대출로 확장할 여지도 있다고 봅니다.


‘블록체인 주식’이라는 도발: 거래소 없는 주식 거래가 가능해질까

피규어가 시장의 시선을 강하게 끄는 지점은, 토큰화가 대출에만 머물지 않고 “주식 자체”로 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피규어는 프로버넌스 기반의 주식(보통주) 토큰을 내놓고, 자체 주식 네트워크에서 거래와 대차(주식 빌려주기)를 투자자끼리 직접 연결해 거래소와 프라임 브로커(기관의 대규모 거래를 중개하는 핵심 중개자)를 줄이려는 구상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일부 벤처 투자자와 경영진이 주식을 매각하는 움직임도 함께 언급됩니다.

이 시도는 매력과 위험이 공존합니다. 성공하면 주식 거래의 비용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지만, 시장 신뢰·유동성·규제 준수·기관 참여라는 네 가지 문턱을 동시에 넘어야 합니다. 결국 “블록체인 위에서 주식을 거래한다”는 문장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구조의 문제로 바뀝니다.


피규어 사례가 던지는 현실적인 결론: 블록체인은 ‘금융의 뒷단’을 바꿀 때 가장 강합니다

피규어의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블록체인을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출 한 건을 처리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그 대출이 다시 거래되는 경로를 매끄럽게 만들며, 자금이 들어오고 나가는 레일을 단순화하려는 접근입니다. 금융에서 가장 큰 혁신은 종종 “눈에 보이는 화면”이 아니라 “뒤에서 돌아가는 정산과 증빙”에서 시작됩니다.

다만 피규어가 지금의 높은 기대를 오래 유지하려면, 헬록에서의 성공을 다른 자산군으로 확장하고, 프로버넌스 생태계를 고립에서 꺼내며, 경쟁자들이 이미 구축한 인프라와 정면 승부해야 합니다. 블록체인이 금융을 바꾸는 길은 열렸지만, 그 길에서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숫자와 실행이 더 필요합니다.


참고 출처:

This Fintech Uses Blockchain to Streamline Lending. Its Stock Is Up 50% Since Its IPO. - Barr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