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는 늘어도 수익은 제자리? 스트리밍이 직면한 '경험의 경제' 역설
넷플릭스는 늘어나는데 지갑은 안 열린다? '집콕' 대신 '외출' 택한 소비자들
매 분기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거대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수백만 명의 신규 가입자가 늘어났다고 발표합니다. 숫자만 보면 스트리밍 시장은 여전히 황금기를 구가하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그 화려한 지표 이면에는 차가운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구독자 수는 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이 시장에 쏟아붓는 전체 지출 규모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지 시각 2026년 3월 30일, 리서치 기관 모펫 네이선슨(Moffett Nathanson)이 발표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미디어 시장의 성장은 '시장 자체가 커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존 파이를 옮겨온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집 안에서 TV 리모컨을 누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공연장과 경기장으로 발길을 돌리며, 미디어 산업의 주도권이 '안방'에서 '현장'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습니다.
성장의 착시: '코드 커팅'이 만든 신기루
스트리밍 서비스의 가입자 증가가 왜 시장의 실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일까요? 답은 '코드 커팅(Cord-Cutting, 유료 방송 해지)'에 있습니다.
최근의 구독자 증가는 새로운 시청 층이 유입된 결과가 아니라, 비싼 케이블 TV를 끊은 시청자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사'를 온 결과입니다. 즉,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쪽 주머니에서 나가던 돈을 저쪽 주머니로 옮겼을 뿐, 미디어 콘텐츠에 쓰는 전체 비용을 늘리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수치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모펫 네이선슨의 분석가 로버트 피시만(Robert Fishman)은 2019년 이후 비디오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CAGR)이 고작 0.4%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에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실질 성장률은 마이너스 3%까지 떨어집니다. 겉으로는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시장의 가치가 쪼그라들고 있었던 셈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스트리밍 가입자 증가의 동력이었던 케이블 해지 속도마저 최근 몇 분기 동안 둔화하고 있어, 스트리밍 플랫폼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현장으로 쏟아지는 돈: '경험'에 베팅하는 소비자들
안방극장이 정체된 사이, 집 밖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말 그대로 '폭발'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억눌렸던 외출 본능이 해제되면서, 소비자들은 스트리밍 구독료 몇 달러를 아끼는 대신 수백 달러짜리 콘서트 티켓과 경기장 입장료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2년 동안 콘서트와 영화 등 라이브 이벤트 지출은 무려 100억 달러가 증가하며 총 600억 달러 규모로 커졌습니다. 스포츠 경기 관람 지출 역시 같은 기간 70억 달러나 늘어났죠.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에라스 투어(Eras Tour)'입니다. 이 투어는 티켓 판매로만 2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2025년 투어를 진행한 사브리나 카펜터(Sabrina Carpenter) 역시 7,74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라이브 시장의 위력을 증명했습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주식 시장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라이브 이벤트 전문 기업인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 LYV)과 영화관 체인 시네마크(Cinemark, CNK) 같은 오프라인 기반 기업들의 주가는 올해 S&P 500 지수 수익률을 상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부분의 전통적인 미디어 및 스트리밍 관련 주식들은 시장 평균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고전하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시장과 '번들링'의 귀환
소비자들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시장의 극심한 '파편화'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플랫폼이 생겨났고, 각각의 가격 체계도 제각각이라 소비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피시만 분석가는 소비자가 일일이 서비스를 골라 담아야 하는 지금의 마이크로 수준 선택 방식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스트리밍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기 위해서는 과거 케이블 TV 시절처럼 여러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 제공하는 '번들링(Bundling)' 모델이 더 공격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물론 긍정적인 신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전통 TV 광고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빠르게 옮겨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광고 수익을 포함할 경우 비디오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약 1.4%로 개선되며, 향후 2년 내에 3.3%까지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옵니다.
결국 스트리밍 플랫폼들이 가입자 수라는 숫자 놀음에서 벗어나, 광고와 번들링을 통해 실제 수익성을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생존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안방'의 위기, '경험'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미디어 시장은 지금 거대한 지각변동을 겪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시간과 돈은 더 이상 소파 위에 머물지 않으며, 그들은 직접 보고 느끼는 '경험'을 위해 기꺼이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가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을 전 세계에 독점 라이브 스트리밍하며 '안방의 현장화'를 시도했지만, 그 파급력이 기대만큼 시장 전체의 지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는 아무리 화질이 좋고 콘텐츠가 훌륭해도, 집 안에서 화면으로 보는 경험(At-home)이 실제 공연장의 진동과 열기(Out-of-home)를 온전히 대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또한, 이러한 대형 이벤트가 기존 구독자들을 위한 '팬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신규 유입과 지속적인 지출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파편화된 구독 모델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합니다.
분석가 로버트 피시만은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이제 각자도생하는 방식을 버리고, 과거 케이블 TV처럼 서비스를 하나로 묶는 '번들링(Bundling)' 모델로 더 공격적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소비자의 피로도를 낮추고 플랫폼 간의 장벽을 허물어, 라이브 이벤트의 가치를 안정적인 수익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는 뜻입니다.
결국 '안방극장의 위기'를 돌파할 열쇠는 단순히 콘텐츠의 양을 늘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파편화된 서비스를 통합해 편의성을 높이고, 광고 시장과의 결합을 통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며, 오프라인의 감동을 디지털 환경에 어떻게 최적화해 안착시킬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경험'에 매료된 소비자의 발걸음을 다시 거실로 돌리기 위한 스트리밍 공룡들의 다음 수순이 무엇일지,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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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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